경제

강달러·금리인하 전망 후퇴에 원화 약세…고환율 장기화 [변동성 커진 자본시장]

원화 악재 민감도 높아진 국면 지속

서학개미 해외투자도 달러수요 자극

커진 환율 변동성에 증시 투심 냉각

뉴욕증시가 6일(현지시간) 고용시장 냉각과 인공지능(AI) 업종의 주식 고평가 논란이 재부상하면서 하락마감했다.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가 시황이 표시된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AP]
뉴욕증시가 6일(현지시간) 고용시장 냉각과 인공지능(AI) 업종의 주식 고평가 논란이 재부상하면서 하락마감했다.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가 시황이 표시된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AP]

원/달러 환율이 연일 변동성을 키우더니 7일 개장 초반 1450선을 다시 뚫었다. 국내 증시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외국인이 언제든 국내 주식을 팔고 원화를 달러로 바꿔 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데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 후퇴로 전반적으로 민감도가 높은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위험회피 심리가 유지되면서 1450원대 상승을 시도하는 장세가 반복될 것으로 진단했다.

▶불확실성에 힘 못 쓰는 원화=원/달러 환율이 국내외 증시 하락과 안전자산 선호 등 겹악재가 맞물리면서 7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이날 코스피 지수도 개장과 동시에 4000선을 내줬다. 간밤 미 증시가 인공지능(AI) 관련주 고평가 부담과 미국의 일자리 감소 소식에 급락하면서 투자심리 냉각을 가져왔다. 최근 외부 요인에 예민하게 반응해 온 외환 시장도 이날 하방 압력이 커지는 흐름이다.

원화 약세가 이어지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달러 강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말 97.91이었던 미 달러화 지수(달러 인덱스·DXY)는 10월 말 99.53으로 뛰었고, 지금도 100선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의 연내 추가 금리 인하 전망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며 달러 강세가 이어졌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10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이후 연준 위원들이 다소 덜 비둘기적(통화 완화 선호)인 발언을 내놓으면서 12월 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지고 금융시장 내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달러 대비 가치가 떨어진 건 원화만이 아니다. 한은에 따르면 엔화는 지난달 달러화 대비 3.6% 절하됐다. 특히 엔화는 전통적으로 원화와 동조성이 있는 통화라 더 주시할 필요가 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집권 이후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시그널이 약화되면서 엔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파운드화 가치도 큰 폭으로 하락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파운드화(-2.1%)와 유로(-1.4%)도 가치가 떨어졌다.

▶잘 나가던 코스피, 환율로 ‘찬물’=커진 환율 변동성에 국내 증시 투심도 얼어붙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62.73포인트(1.56%) 내린 3963.72로 출발한 뒤 오전 장 외국인 매수세에 힘입어 4010선을 가까스로 회복했다.

위재현 NH선물 이코노미스트는 “장중에도 외국인들의 국내 주식 투매가 이어진다면 원/달러 환율은 달러 약세가 아닌 수급 부담에 영향받아 상승 압력이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의 해외 투자가 급증한 점도 달러 수요를 가중시키는 변수로 꼽힌다. 지난달 외국인이 5조9460억원어치 국내 주식을 순매수하며 환율에 호재로 작용했지만 이 기간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증시 순매수 규모는 이보다 3조원 많은 약 8조9000억원(62억4800만달러)에 이른다. 이는 통계가 집계된 2011년 이후 최대치다. 해외 주식 보관액도 약 259조원(1817억6854만달러)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우리 증시가 좋다고 해도 서학개미들이 달러를 사서 나가는 규모가 더 많으면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역내 수입 결제와 해외주식 투자를 위한 환전 등 달러 실수요 매수세가 환율 하단을 견고히 받쳐주는 상황”이라고 했다.

▶구조적 원화 약세에 당분간 고공행진=전문가들은 연말까지는 환율이 1450원대 안팎에서 오르내리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낙원 NH농협은행 FX파생전문위원은 “연내 환율은 1410~1470원 범위에서 등락할 것으로 본다”며 “최근 글로벌 증시가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어 일부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식시장 과열에 더해 미 금리 인하가 연내 어렵다고 보기 때문에 연말부터 내년 1분기 사이에 점진적으로 조정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정책 역시 세계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내년에는 트럼프 정책의 중심이 ‘관세’에서 ‘감세’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 경우 세수 부족,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를 자극해 미국 장단기 금리차를 본격적으로 확대하는 요인이 될 것이고 이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금리차가 더 확대될 수 있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대미투자도 전반적인 환율의 수위를 올리는 요인으로 지속 작용할 수 있다. ‘3500억달러 선불 투자’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매년 200억달러씩 10년 동안 달러가 해외로 빠져나가게 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외환보유액으로 쌓을 수 있던 자금이 해외로 빠지면 외환당국의 개입 능력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미 재무부 국제 담당 차관보를 지낸 클레이 로워리 미 국제금융협회(IIF) 부총재는 전날 세계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조찬 강연회에서 “한국의 자금 조달 과정에서 큰 충격을 줄 수도 있다. 200억달러 요구가 얼마나 유지될지 모르겠지만 교역국에 억지로 투자하게 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지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며 “트럼프 정권에서는 계속해서 관세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벼리·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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