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서클 러브콜에 4대은행 ‘신중모드’

서클, 은행권에 먼저 회동 제안

은행제휴로 유통 기반 확보 포석

당장 협력보다 당국 기조에 촉각

은행 스테이블코인 자체역량 강화

세계 2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 최고 경영진 방한이 다음주 예정돼 국내 주요 은행권과 회동이 예상되는 가운데, 은행들은 당장 서클과의 구체적 협력에 신중한 입장이다.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 논의가 아직 초기 단계인 데다 최근 금융당국 수장 교체로 정책 방향성과 추진 속도 역시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은 모두 다음 주 방한 예정인 히스 타버트 서클(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 사장과 면담을 검토하고 있다. 서클 측의 NDA(비밀유지협약) 요구에 따라 구체적 일정을 밝히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은행권은 대체로 실무진들이 참석하는 방향으로 조율하는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서클 측 요청으로 실무진 차원의 접촉이 있었다”면서 “(서클과) 구체적인 안건이 오간 것은 아니고 상황을 지켜보는 수준”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주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국내 유통과 송금 등 국제 거래,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등 부문에서 아이디어를 논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클의 이번 방한은 은행들과의 제휴를 통해 유통 기반을 확보하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수익 모델 강화를 위한 결제 네트워크 구축 전략의 일환으로 국내 주요 스테이블코인을 기반으로 한 결제·송금 등 실사용 사례 확대를 염두에 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다만, 은행권에선 아직 관련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클과 협력 논의를 시작하기엔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많다.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발행사 조건 등 조율해야 할 쟁점도 산더미다.

한국은행도 ‘세계경제학자대회’ 등 각종 대외행사에 꾸준히 참여하며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자와 이찬진 신임 금감원장이 원화스테이블코인 도입에 어떤 속도로 접근할지도 관건이다.

한 은행 임원은 서클의 방한 일정에 대해 “마케팅 성격이 짙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면서 “지주 및 은행장 등 고위급 인사까지 참석할지 여부는 신중하게 검토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또 은행 관계자는 “실무진 간 원론적인 수준의 질의응답만 오간 것을 두고 과도한 해석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일각에선 이러한 미묘한 분위기를 전통 금융 인프라와 신생 디지털 자산 기업 간 헤게모니 경쟁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아직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 시장에 선제적으로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글로벌 업체들과 자체 경쟁력 확보에 나선 국내 금융사 간의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각 은행은 국내 핀테크 기업들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등 자체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KB금융의 경우 ‘가상자산 대응 협의체’ 내 ‘스테이블코인 분과’를 마련해 정책 변화에 따른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지급결제 시스템의 기술 검증도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소상공인 지원 등 특정 사용처에만 결제할 수 있도록 미리 프로그램하는 시스템(프로그래머를 머니) 등을 구축하는 방안도 연구할 계획이다.

하나금융 역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앞서 제도·사업·인프라 등을 검토·분석하고 있다. 그룹 관계사 유관 부서로 구성된 워킹그룹을 통해 커스터디(디지털자산 관리·보관)와 토큰증권·스테이블코인 등을 주로 연구하고, 지난해 글로벌 커스터디 기업과 합작설립한 ‘비트고코리아’의 수탁업 인허가도 준비 중이다.

우리은행도 스테이블코인 등 가상자산 사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자산 팀’을 운영하고 있다. 가상자산 생태계 확장에 가장 적극적인 은행으로 꼽히는 NH농협은행은 이번 서클과의 면담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대신 블록체인팀을 앞세워 기술 검증 등 실무 준비를 하고 있으며 ‘프로젝트 팍스’에 참여해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원화와 엔화 간 해외송금 테스트도 진행 중이다.

유혜림·김은희 기자

forest@heraldcorp.com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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