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구두 합의만 있는 ‘트럼프 관세’ [이슈&뷰]

日 자동차등 기존관세 +15%에 당혹

트럼프 특유의 뒤집기식 관세정책

세부 협상 내용 비공개 상황 속

각국 불확실성 대한 경계심 지속

韓 최혜국 대우도 변경 가능해

관세협상 타결 후속 작업 시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경제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서화 없이 구두로만 통상 합의를 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들이 심각한 혼란에 직면하고 있다.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경제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서화 없이 구두로만 통상 합의를 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들이 심각한 혼란에 직면하고 있다.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상 협의에서 공식 문서 없이 구두로만 이뤄진 무역 합의가 잇따르면서 주요 교역국이 혼란에 빠졌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100% 부과를 선언한 반도체의 경우 우리나라는 ‘최혜국 대우(MFN)’를 약속받았지만 이를 공식화한 문서는 없다. 자동차 및 부품 역시 관세율을 2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구두 합의했지만 정확한 발효 시점이나 적용 방식에 대한 공식 확인이 미국 측에서 나오지 않아 시장 혼란이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3면

벌써 일본에서는 ‘구두 합의’ 우려가 현실로 터졌다.

일본은 미국과 상호관세 15% 부과에 합의하면서 유럽연합(EU)처럼 기존 관세율과 합산하지 않고 최대 15%로 제한되는 ‘특례 대상’에 포함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미국이 발표한 대통령령에는 EU만 특례 대상으로 명시됐고 일본은 빠졌다. 이렇게 되면 일본산 직물은 기존 관세 7.5%에 상호관세 15%가 추가돼 22.5%, 쇠고기는 26.4%에 15%가 추가돼 41.4%까지 치솟는다. 자동차 품목 관세도 15%가 아닌 17.5%(기존관세 2.5%+상호관세 15%)를 적용 받게 됐다.

이에 일본 정부는 즉시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을 워싱턴에 급파해 미 정부의 해명을 요구했고, 미국 측은 대통령령 수정을 통해 일본을 특례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비공식적으로 약속한 것으로 8일 알려졌다.

한국 역시 미국의 공식 문서에는 특례 대상국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로 대부분 품목이 무관세 상태이며, 이번에 합의된 15% 상호관세가 실질적 최종세율”이라는 입장이다.

무역 불확실성은 반도체 분야에서 특히 심화되고 있다. 8일 우리 정부는 트럼트 대통령이 ‘수입 반도체에 대략 1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지난달 30일 한미 무역 합의에 따라 반도체 관세 최혜국 대우 약속을 받았다”고 밝혔다. 최혜국 대우는 특정 국가에 가장 유리한 대우를 해줬다면 다른 교역 상대국에도 이를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국제 무역 규범이다.

협상타결 직후에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워싱턴 DC의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결과를 브리핑하며 “반도체·의약품 등 품목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7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우리는 협상에서 반도체·바이오 등에 대해 미래의 관세가 정해지더라도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했다”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가 100% 관세를 맞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여 본부장은 유럽산 반도체에 적용된 15%를 예상 세율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국 측에서 반도체·의약품 등 품목관세 부과시 우리나라에 최혜국 대우를 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의 트윗 한 줄이 전부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서 “한국은 다른 어떤 국가보다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도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서 한미 간 무역 합의 결과 소식을 전하며 한국의 3500억달러 대미 투자와 농산물을 포함한 시장 개방 등을 강조했을 뿐 반도체 품목별 관세 ‘최혜국 대우’에 관한 언급이 없었다.

미국은 한국산 수입품에 대해 15%의 상호 관세율을 부과하는 것으로 협상이 타결됐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협상의 구체 사항을 담은 문서인 팩트 시트(fact sheet)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미국은 일본에 대해 팩트시트를 발표했음에도 이달 6일 공표된 미 연방 관보는 특례 조치를 적용하는 대상으로 일본을 빼고 EU만 거론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요즘은 백악관이 일방적으로 팩트시트를 낸다”며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실무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구체적인 합의 내용과 관세율, 적용 시점이 명문화되지 않는다면 ‘구두 약속’은 보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두로만 이뤄진 합의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신속하게 미국 측과 관세협상 타결 후속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통상 전문가는 “정부가 관세협상 후속 작업을 빨리 진행해 타결 내용을 구체화·명확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정리된 문서가 있어야 추가 품목관세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때 명확한 판단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배문숙 기자

osky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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