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달러로 잠식되나” 다급한 중국·유럽 ‘통화주권’ 대응 박차 [머니뭐니]
美 지니어스법으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준비자산=달러 표시, 달러 위상 더 높아져
급물살 속 中·EU 등 세계 각국 대응 고심
![사진은 테더·서클 등 주요 스테이블코인의 로고 [게티이미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9/08/news-p.v1.20250718.ad354259bc544fd8b43966c6bb4a2712_P1.jpg)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미국의 ‘지니어스 법(Genius Act)’ 통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 위력 상승과 함께 달러의 위상까지 더욱 공고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세계 각국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홍콩 달러 스테이블코인 관리 규제를 시행했고, 위안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관한 이야기도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를 도입해 투자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계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8일 한국금융연구원의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본격화 움직임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니어스법은 미국 달러화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니어스법에서 지급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이 미리 정해진 고정가격으로 발행된 디지털자산으로 정의됐고, 지급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은 은행·신용조합·비은행에서 발행할 수 있으며 이들 발행자는 연방 규제 당국에 등록해야 한다.
또 발행자는 스테이블코인 상환 절차를 마련해 공개해야 하고, 발행 잔액과 준비자산 구성을 매월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특히 준비자산은 현금과 예금, 만기 93일 이내 국채 등 안전성이 높은 자산으로 한정되며 미국 내에서 발행·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은 원칙적으로 ‘미국 달러화 표시 자산’으로 구성돼야 한다.
즉,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수요를 확대할 수 있는 도구로 작용할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특히 미국 단기 국채 수요를 직접적으로 늘릴 수 있다.
‘페트로 달러(Petrodollar)’를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1970년대 나온 페트로 달러라는 개념은 원유 거래를 달러로만 결제하게 하면서 세계 달러 수요를 창출했다. 필수 자산인 원유를 달러로만 살 수 있게 하면서 금본위제를 버린 달러에 다시 신용을 불어 넣은 것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도 마찬가지다. 준비자산은 사실상 미국 단기 국채가 대부분이고, 이는 곧 달러 수요와 직결된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늘어날수록 달러의 위상과 신용은 강화된다.
코인 생태계 측면에서도 비슷한 영향이 예상된다. 암호자산을 거래하는 ‘통화’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고정되면 코인 시장에서도 달러의 기축통화 위상은 더욱 확고해진다.
시장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완전히 잠식된 뒤에는 다른 나라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더라도 결국 기준이 되는 달러 스테이블코인과의 가치 차이, 사실상 환율로 실질적 가치를 측정해야 한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병관 한국금융연구원 부장대우는 “미국 달러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뿐 아니라 기관투자자와 대형 은행들이 본격적으로 스테이블코인 산업에 뛰어들게 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미국 달러화를 준비자산으로 하는 스테이블코인의 유통량이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경제보좌관 겸 통화정책국장도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학자대회(ESWC) 발표에서 “자국 통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더라도 달러 스테이블코인 수요는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암호화폐 전쟁에서도 선두를 치고 나가면서 세계 각국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중국은 자국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적극적으로 돌아서고 있다.
먼저 홍콩부터 ‘스테이블코인 조례’를 만들었고 당국이 직접 코인 발행 라이선스를 발급, 관리하기로 했다. 홍콩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제도적으로 가능해진 셈이다.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스테이블코인 라이선스 발급을 원하는 기업은 오는 9월 30일까지 신청서를 제출하라고 밝혔다. 1차 라이선스 발급 대상은 내년 초 확정될 전망이다.
중국 위안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기대감도 피어오르고 있다. 중국은 현재 가상화폐를 금지하고 있지만 위안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다소 개방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내에서도 관련 논의가 한창이다. 우선 유럽연합은 ‘미카(MiCA·암호자산시장 규제)’를 통해 암호자산 시장을 규제하고 자국 투자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EU 회원국 전체에 직접 적용되며, 기존 국가별 암호화폐 규제를 대체할 예정이다.
미카 내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자는 100% 준비자산 보유 및 즉시 상환 보장 의무를 져야 한다. 특히 일일 거래 규모가 100만 건을 넘거나 시가총액이 50억유로를 초과하는 대규모 스테이블코인은 유럽은행감독청(EBA)의 직접 감독 대상이 된다.
동시에 디지털화폐 실험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유로’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수년 전부터 유로존 전역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유로화의 디지털 버전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디지털 화폐가 도입되면 현금 사용이 감소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중앙은행이 보증하는 지불수단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며 글로벌 차원에서 유로화의 사용을 장려하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
디지털화폐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토큰 형태의 화폐를 뜻한다. 중앙은행 보증을 받기 때문에 현금과 동일한 신뢰성을 지닌다. 단기채권 등의 준비금에 의해 실제 법정화폐와의 교환비가 1대 1로 고정(페그)돼 지급이 보증된다고 주장하는 스테이블코인과는 다르다.
ECB는 앞서 여러 차례 스테이블코인의 위험성과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앞서 “(스테이블코인은) ‘화폐의 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어 통화정책 수행 능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은 돈, 지급수단, 결제인프라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며 “이는 통화정책의 효과를 약화하고, 국가의 통화 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th5@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