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말하는 구조개혁의 중요성 [조원경의 현인들의 경제적 조언]


배스킨라빈스에 가면 여러 종류의 아이스크림이 많다. 그중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블루베리와 치즈케이크 맛의 꿀조합으로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 익숙한 영화 제목을 빌려 특별한 맛이나 시즌 메뉴를 내는 전략은 시장에서 유효해 보인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영화화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이야기를 살펴보며 오늘의 관점에서 경제학적 의미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남부 조지아 주 타라 농장의 스칼렛 오하라는 빼어난 미모와 활달한 성격으로 인근 모든 청년들의 애를 태운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이웃 농장의 자제인 애슐리 윌크스뿐이다. 애슐리가 자기 사촌 멜라니와 정식으로 약혼한다는 소식을 접한 스칼렛은 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애슐리는 스칼렛을 사랑하지만 결혼은 자신과 성격이 비슷한 멜라니와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스칼렛은 애슐리와 멜라니에 대한 질투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멜라니의 오빠인 찰스의 구혼을 받아들인다. 얼마 안 가 남북전쟁이 터지고 애슐리와 찰스도 의용군에 입대하게 되는데, 찰스는 전장에 가보지도 못하고 병으로 죽어버려 스칼렛은 졸지에 애 딸린 미망인이 된다. 승기를 잡은 북군이 애틀랜타를 공격해서 불타는 지경에 이르자 스칼렛은 갓 출산한 멜라니를 데리고 고향으로 도망친다. 이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이가 레트 버틀러였다. 그는 찰스턴 명문가 출신으로, 젊은 시절 일으킨 모종의 사건 때문에 집안에서 쫓겨난 후 도박으로 연명하다가 남북전쟁을 기회로 밀수무역 매점매석으로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다. 스칼렛은 그를 싫어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현실주의적 성격에 은근히 끌린다.
전쟁은 남부의 패배로 끝났다. ‘재건 시대’로 불리는 북군에 의한 군정시기가 도래하고 노예제가 폐지된다. 남부의 농장주들은 과거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완전히 잃고 만다. 스칼렛은 레트 버틀러의 청혼을 받아들여 다시 재혼한다. 레트 버틀러와 결혼 했음에도 첫사랑 애슐리를 잊지 못하던 결혼 생활은 첫딸이 다섯 살 나이로 낙마해 죽은 사건으로 파국에 이른다. 애슐리의 부인 멜라니가 죽자 스칼렛은 비라니의 선의를 깨닫고 애슐리에 대한 환상을 버린다. 동시에 자신이 레트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미 스칼렛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린 레트는 그녀의 곁을 떠난다. 스칼렛은 절망에 빠지지만, 그럴 때마다 되뇌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를 읊조리며 이야기는 끝난다.
영화 속 남부는 플랜테이션 경제와 노예제라는 구조적 기반 위에 세워져 있었지만, 전쟁이라는 외부 충격으로 완전히 붕괴한다. 오늘날로 치면, 산업 구조를 지탱하던 기술·제도 기반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새로운 경제 질서가 부상하는 시기와 비슷하다.
지금은 어떨까? 우리는 전통적인 자본주의를 넘어 ‘디지털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속에 살고 있다. 기업의 경영은 전통적인 자원 관리에서 벗어나 기술과 데이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인공지능(AI)와 로봇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양자 컴퓨팅과 빅데이터 분석은 의사결정의 정확성과 속도를 혁신적으로 높인다. 기업과 국가는 이러한 첨단 기술을 활용해 시장을 예측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며, 신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한다. 과거의 산업 자본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지점에 우리가 서 있다.
1860년대 조지아 주, 초록빛 목화밭이 끝없이 펼쳐진 토라(Tara) 농장. 스칼렛 오하라는 사교와 연애에만 몰두하며 세상이 변치 않을 것이라 믿었다. 기득권이 안주하는 순간, 구조적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녀는 전쟁 전 부유한 농장주의 딸이었지만, 전쟁 이후에는 생존을 위해 ‘토라’ 농장을 지키고, 이후 도시에서 목재 사업 등 새로운 자본 축적 방식을 찾아간다. 시스템 충격에 따른 산업 붕괴는 오늘날로 치면 AI·플랫폼 혁신이 촉발한 구조 파괴와 유사하다. 전통 자산(농지·노예)의 가치가 0이 되자, 새로운 생존 자본(사업 감각·노동력)을 찾는 전환이 필요했다. 이는 마치 코닥이 필름 시장의 지배자였지만,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처음 개발하고도 기존 사업 구조를 지키려다 시장에서 사라진 것과 비슷하다.
전통적 자산의 가치가 바람과 함께 사라진 상황에서, 스칼렛은 노동·네트워크·거래 감각을 새로운 자본으로 전환한다. 안정된 경제 환경 속에서 기득권의 자본 안주를 믿었던 그녀는 변화한다. 남북 전쟁 전에는 지주와 노예라는 극단적 불평등 구조, 전쟁 후에는 재건 과정에서 북부 자본가와 남부 잔존 엘리트, 해방된 흑인들의 불균형이 새로운 갈등을 낳았다.
오늘날에도 산업 전환기에는 플랫폼 기업 소유주·데이터 자산 보유자와 전통적인 노동자 및 중소기업 사이에 유사한 격차가 벌어진다. 데이터는 어쩌면 오늘날의 토라 농장이 아닐까. 디지털 자본주의에서 이 ‘토라’에 해당하는 것은 데이터·네트워크 자산이다. 기업들은 데이터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모든 전략을 동원하며 승자 독식을 꿈꾼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재건기의 상인, 투기꾼, 투자자는 경쟁을 뚫고 시장을 장악하면서 폭발적으로 부를 쌓아나갔다.
플랫폼 경제에서도 한 번 네트워크 효과를 얻으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가 반복된다. 오직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스칼렛의 생존 공식은 ‘하느님을 증인 삼아 다시는 굶주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절박함과 기민한 판단’에 있었다. 디지털 자본주의에서도 기술·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기업과 개인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북부 자본가는 새로운 지배 세력으로 오늘날의 빅테크 기업이나 글로벌 투자 자본으로 치환 가능한 구조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산업 붕괴 → 자본 재배치 → 새로운 질서에서의 적응이라는 경제 변동의 전형적인 서사를 담고 있다. 이는 디지털 자본주의 전환기에 기업과 개인이 겪는 ‘구경제 붕괴 → 신경제 적응’ 과정과 닮아 있다.
레트와의 이별은 어떤 의미일까? 파트너십 실패는 사업에서도 치명적이다. 디지털 자본주의의 초기 버전이었던 플랫폼 경제에서도 동맹과 네트워크 신뢰가 깨지면 경쟁자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듯, 스칼렛은 레드 버틀러라는 ‘전략적 동반자’를 잃었다. 권력과 사랑이 얽힌 동맹은 깨지기 쉬웠다. 모든 것을 잃은 스칼렛은 토라로 돌아가 재기를 다짐한다. 디지털 자본주의에서도 한 번의 실패가 끝이 아니다. 데이터·브랜드·네트워크라는 새로운 토라를 기반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도 일론 머스크도 젠슨 황도 모두 실패를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인물들이다.
여기서 디지털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주는 교훈을 생각해 본다.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안주는 위험하다. 오프라인 산업은 자칫 몰락의 위험에 처한다. 넷플릭스는 DVD 대여업체에서 스트리밍, 그리고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사로 변신하며 블록버스터를 무너뜨렸다. 이제 시청률 폭락 속에서 전통 미디어는 넷플릭스로 대별되는 거대 디지털 경제의 대표회사와 처절하게 싸우고 있으나 힘에 부쳐 보인다.
스카렛과 레트의 금이 가는 것은 신뢰 기반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말한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야 말로 플랫폼 경제, 공유경제, 생태계 경제라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다양한 모습의 핵심이다. 신뢰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거래비용을 줄이는 핵심 자산이며, 그것이 깨지면 파트너십과 네트워크 모두 무너진다. 이는 우버(Uber)가 승객과 운전기사와의 신뢰를 훼손하거나 규제 당국과의 갈등으로 시장 확장 속도가 둔화된 사례를 떠 올리게 한다.
그 속에서 회복 탄력성을 잃지 않는 스카렛 오하라의 모습은 우리가 처한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실패 후 재기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실패와 손실은 끝이 아니라, 재기의 자본이 된다. 일본 닌텐도는 위유(Wii U)의 실패 이후 닌텐도 스위치로 반등하며 세계 게임 시장의 강자로 복귀했다. 위유는 실패한 콘솔로 꼽힌다. 전작인 위(Wii)의 성공에 비해 낮은 판매량과 시장 반응을 보였고, 이는 닌텐도 역사상 최악의 성적으로 기록되었다.
오늘의 디지털 자본주의에서 산업 구조가 붕괴하는 속도는 더 빠르고, AI와 플랫폼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에서, 과거의 토라는 ‘데이터’와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변신했다. 한 번 우위를 점한 플랫폼은 폭발적인 성장을 하며, 시장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다. 페이스북(메타)은 초기에 가입자 수가 늘어날수록 가치가 커지는 네트워크 효과로 글로벌 소셜미디어 시장을 장악했다.
기득권의 영광은 바람처럼 사라지고, 적응하는 자만이 내일의 무대에 설 수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지금 우리 비즈니스 환경 이야기와 같다. 스칼렛 오하라는 자기중심적이지만 냉정한 판단력을 소유한 인물이다. 초반의 스칼렛은 사교계의 중심에 있으면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감정과 관계를 전략적으로 이용한다.
전쟁 이후에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도덕적 규범보다 생존과 자본 확보를 우선시 한다. 초기에 스타트업 창업자는 “브랜드 이미지”보다 현금 흐름과 시장 점유율 확보를 우선시해야 한다. 목화 농장 귀족의 딸에서, 전쟁 후 목재 사업가로 빠르게 변신하고 결혼도 경제적 파트너십으로 활용하는 그녀를 보자. 그 모습에서 기존 산업이 무너질 때, 자신의 기술과 자본을 전혀 다른 업종으로 과감히 전환하는 기업가의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그녀가 경제적 재기의 의지를 다지는 상징적인 순간은 외부 투자 철회, 제품 실패 후에도 사업 모델을 바꿔 재도약하는 창업자의 모습이다. 스칼렛은 사람을 다루는 감각이 뛰어나지만, 장기적 신뢰 구축에는 실패한다. 레트 버틀러와의 관계는 사업에서 파트너와의 신뢰가 깨질 때의 위험을 보여준다. 이는 단기 실적을 위해 파트너·고객과의 신뢰를 희생하는 기업이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가치를 잃는 경우와 흡사하다. 그녀는 끊임없이 과거의 이상(애슐리)을 추억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냉혹한 선택을 한다.
현대의 창업자는 원래 꿈꾸던 제품 비전과 투자자 및 시장 요구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스칼렛 은 도덕보다 생존, 감정보다 기회, 전통보다 변화를 택하는 인물이다. 그녀를 통해 구 산업의 경쟁력 상실을 짚어 보며 지금이야말로 경쟁력 회복을 위해 구조개혁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거릿 머널린 미첼
마거릿 머널린 미첼(1900. 11 ~ 1949. 8월)은 1936년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이다. 1926년부터 1년 동안 자료를 모은 뒤 집필을 시작해 1933년에 1차로 탈고했으며 1935년 출판사 측이 출간을 결정한 후에도 다시 1년간 편집, 교정, 역사적 고증 수정을 거쳐 1936년 발표했다. 1937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1939년에는 중퇴했던 모교 스미스 칼리지에서 명예 석사학위를 받았다. 1949년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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