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쾅! 15억 보험금 남기고 사망한 남편…보험사는 ‘고의’라며 소송을 걸었다 [세상&]
새벽 4시께 교통사고로 차주 사망
수령 가능 보험금 15억원…보험사, 유족 상대 소송
크게 4가지 쟁점에서 공방…보험사 패소
![사진은 참고용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8/18/news-p.v1.20250813.54c3e3f0bfa04298bd1219a089c504ee_P1.jpg)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지난 2023년 4월, 강원도의 한 고속도로. 새벽 4시께 교통사고가 발생해 차주가 사망했다. 차주는 터널 입구 좌측에 설치된 콘크리트 옹벽을 시속 약 96.2㎞로 들이받았다.
해당 사고로 유족이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은 15억원이 넘었다. 차주 A씨는 17개의 보험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보험사 중 일부인 KB손해보험은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고의 사고라고 주장했다.
보험사는 A씨가 한 달에 납입한 보험료가 300만원이 넘고, 수억 원 상당의 빚이 있었으며, 과거 고의로 보험사고를 일으킨 이력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유족은 반박했다.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
보험사, 4가지 이유에서 ‘고의 사고’ 주장
![사진은 참고용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8/18/news-p.v1.20250813.e026cae7d1864087b66063f379943992_P1.jpg)
해당 사고가 졸음운전, 순간적인 판단 오류 등 부주의에 의한 사고였다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게 맞았다. 반면 A씨의 고의에 의한 사고였다면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었다.
보험사의 주장은 크게 4가지로 요약됐다. A씨가 지나치게 많은 보험계약을 체결했고, 사망 당시 재산 상태가 열악했으며, 과거 고의로 보험사고를 일으킨 이력이 있으며, 보험사 의뢰에 따라 공학박사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A씨가 사고를 피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핸들을 조작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하나씩 살피면 다음과 같았다.
1. 보험사 “보험만 17개, 납입 보험료 월 313만원, 보험금 15억”
보험사는 “A씨의 보험 내역이 이례적”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A씨는 사망 당시 17개의 보험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매월 납입한 보험료만 313만원이 넘었고, 해당 사고로 A씨의 유족이 받을 수 있는 총 보험금은 15억1522만원이 넘었다.
이례적인 점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보험계약 중 대부분은 계약자와 수익자 모두 A씨였다. 그런데 A씨는 사고가 발생하기 4개월 전, 거의 모든 보험계약의 계약자 및 수익자를 배우자 명의로 변경했다. 이렇게 되면 보험금에 대한 채권추심을 피할 수 있고, 상속세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2. 보험사 “운영회사 매출액 감소…본인 빚 3억, 배우자 빚 4억”
A씨는 중고자동차 매매업 회사의 대표였다. 이 회사의 사고 당시 매출액은 4억원을 밑돌아 예전에 비해 감소한 수준이었다. A씨에겐 은행 빚이 3억 3000여만원 정도 있었고, A씨의 아내에게도 4억 5800여만원의 빚이 있었다.
보험사 측은 “A씨의 재산 상황을 고려하면 해당 사고는 고의로 일으킨 사고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3. 보험사 “고의로 보험사고 발생시킨 이력 있다”
보험사는 “과거 A씨가 고의로 보험사고를 발생시킨 이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2020년 2월께 고속도로에서 차량을 운행하다 중앙분리대를 충격하는 사고를 일으켰다. 보험사는 A씨를 상대로“고의 사고이므로 보험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2·3심을 거쳐 보험사의 승소가 확정됐다.
4. 보험사 “공학박사 보고서 따르면 고의 사고”
보험사 의뢰에 따라 법원에 제출된 한 공학박사의 보고서도 보험사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A씨는 가로등 불빛에 의해 콘크리트 옹벽을 인식할 수 있었지만 이를 피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핸들을 움직이지 않았다. 또한 최소 2번의 핸들 조작에 의해 도로를 이탈했으므로 고의 사고가 맞았다.
보고서는 “도로 상황을 고려하면 사고 당시 차량 바퀴에서 불규칙한 진동과 소리가 발생했을 것”이라며 “도로를 이탈한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졸음운전에 의한 사고 가능성도 없다”고 했다.
유족, 4가지 이유에서 ‘고의 사고’ 반박
![사진은 참고용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8/18/news-p.v1.20250813.16d937c542dd41208d55e5d130530875_P1.jpg)
반면 유족은 “해당 사고는 급격하고 우연한 외부 요인에 의한 사고”라며 고의 사고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크게 4가지 근거를 들었다.
유족은 “A씨가 가입한 보험은 사고에 임박했을 때 집중적으로 가입한 것이 아니었고, 경제적 상황이 그 정도로 열악하지 않았으며, 보험사가 제출한 보고서는 일부 사정만 취합해 신뢰도가 낮을 뿐 아니라 당시 A씨가 극단적 선택을 결심했다고 볼만한 사정도 없다”고 했다.
역시 구체적으로 하나씩 살피면 다음과 같았다.
1. 유족 “11년에 걸쳐 매년 꾸준히 가입…노후준비·투자 목적”
유족은 “A씨가 다수의 보험계약을 체결한 사실은 있지만 이는 사고가 임박한 때 집중적으로 가입한 게 아니라 배우자와 결혼하기 전부터 11년에 걸쳐 매년 꾸준히 가입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질병치료, 암 진단 등 다른 사고도 함께 보장하는 것”이라며 “특정 보험은 65세가 되면 15년간 생활자급이 지급되므로 노후준비를 위한 수단으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펀드형도 있어 투자 기능도 있으므로 다수의 보험계약을 체결한 것만으로 고의 사고 목적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2. 유족 “연봉 약 8000만원 …경제적 압박 없었다”
유족은 “사고 당시 자살을 결심하게 할 정도로 경제적인 압박을 받고 있었다고 볼 정황도 없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A씨와 그의 배우자는 같은 회사에서 대표이사·경리 업무를 담당했는데 둘의 급여를 합치면 연간 7800만원 수준이었다. 그외 법인카드를 업무추진 비용 등 명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A씨의 회사는 2018년엔 매출액이 40억원에 달했으나 2023년도엔 1분기 매출액이 4억원 수준이었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다른 사업을 구상하기 위한 것으로 일시적인 현상이었다”며 “당시 보험료 부담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 상황이 악화하진 않았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채무에 대해서도 경제적인 압박은 없었다고 했다. 유족 측은 “채무의 대부분은 전세자금 대출채무, 회사 사업장 임차보증금 대출채무, 아파트 분양대금 납부를 위한 중도금 대출”이라며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아니었으며 채무 변제를 독촉받고 있지도 않았다”고 했다.
3. 유족 “보험사 제출 보고서 신뢰도 낮다”
유족은 “보험사가 제출한 보고서는 신뢰도가 낮다”며 본인들이 의뢰한 다른 공학박사가 제출한 보고서도 제출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차량이 차선을 벗어난 지점부터 사고지점까지 3~4초면 도달할 수 있어 과실(실수)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또한 유족 측은 “사고 차량에 블랙박스 영상이 없었다”며 “자동차관리법 개정 이전의 사고기록장치(EDR)가 장착된 차량이라 브레이크 작동 여부 등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험사가 제출한 보고서는 보험사의 주장에 부합할 가능성이 있는 일부 사정만 취합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4. 유족 “극단적 선택 결심했다고 볼 계기·사정 없다”
끝으로, 유족 측은 “A씨에겐 극단적 선택을 결심했다고 볼만한 계기나 사정이 없다”고 했다.
유족 측은 “유서 등 객관적인 물증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자녀가 1명 있고, 원만한 부부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고 전날 부부동반 저녁약속을 잡기도 했고, 사고 지점이 거주지에서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곳이므로 사고를 고의로 일으켰다기엔 이례적이다”라고 했다.
법원, 유족 손 들어줬다…“과실 의한 사고 가능성 배제할 수 없어”
![법원. [연합]](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8/18/news-p.v1.20250813.dd8fa54fce5744b6b6700665674f9296_P1.jpg)
모든 사정을 종합한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1민사부(부장 조정민)는 지난 6월, KB손해보험이 A씨의 유족에게 5억 28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해당 사고가 A씨의 고의가 아닌 과실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새벽 4시경 어두운 새벽 시간에 고속도를 운전하는 경우 일반적인 운전자라고 하더라도 졸음운전, 순간적인 판단오류, 운전 부주의 등이 결합해 핸들을 제때 조작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보험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론 일반적인 상식을 고려했을 때 A씨의 사망원인이 극단적 선택이 아닐 가능성에 대해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직 이 판결은 확정되지 않았다. KB손해보험 측에서 항소했다. 2심이 열릴 예정이다.
notstr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