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통계도 사람 만나야 나옵니다” 폭염도 못막는 조사관 발걸음

광진구 자양동 통계 현장 동행기

라포·신뢰 쌓은 통계의 최전선

쿨넥·선스틱 등 안전조치 병행

“이 땀방울이 정책으로” 사명감

강인옥 통계청 서울사무소 고용통계1팀장과 박진자 통계조사관이 7월 28일 37도를 웃도는 서울 광진구 자양4동 주택가 골목을 걷고 있다.  김용훈 기자
강인옥 통계청 서울사무소 고용통계1팀장과 박진자 통계조사관이 7월 28일 37도를 웃도는 서울 광진구 자양4동 주택가 골목을 걷고 있다. 김용훈 기자

지난달 28일, 서울 광진구 자양4동. 오후 1시가 조금 지난 시각, 골목을 덮친 열기는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휴대폰 화면엔 ‘37도’라고 찍혔지만 체감온도는 그보다 훨씬 높았다. 땀이 등을 타고 죽 흘러 내렸다.

이런 날씨에도 통계청 서울사무소 고용통계1팀장 강인옥 씨와 통계조사관 박진자 씨는 어김없이 길을 나섰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자양동의 한 다세대주택 2층. 올해 78세인 정남열 씨가 혼자 사는 집이다. 정 씨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성실히 응해왔다. 근로일수를 묻는 통계조사관의 물음에 정확하게 답하기 위해 자신이 일한 날을 달력에 꼼꼼히 표시할 정도다.

강 팀장과 박 조사관은 이날 가방에 특별한 물품을 챙겨왔다. 무더위에도 야외 근로를 이어간다는 정 씨에게 전해주기 위해 쿨넥, 쿨링타올, 선스틱 등이다.

“이건 목에 두르면 시원한 쿨넥이에요. 선스틱도 함께 드릴게요” 박 조사관이 물품을 건네자, 강 팀장은 선스틱을 꺼내 직접 정 씨의 얼굴에 발라주며 사용법을 설명했다. 강 팀장은 사비로 준비한 수박 한 통도 건넸다.

서울 한강 이북 14개 자치구를 담당하는 통계청 서울사무소 소속 조사관은 총 48명이다. 이들이 수행하는 조사는 크게 ▷가계동향조사(조사관 1인당 30가구) ▷경제활동조사(40~60가구) ▷집세조사(40~50가구) 등 세 가지로 나뉜다. 가구의 소비, 고용 상태, 주거비용 등을 파악해 국가 통계를 생산하는 기초 자료로 사용한다.

하지만 폭염 속 조사 현장은 고행에 가깝다. 박 조사관은 “낮엔 대부분 부재 중이고, 귀가하는 가구원을 만나려면 밤 10시까지도 기다려야 해요”라며 “에어컨 나오는 카페에서 기다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다 놓치면 끝”이라고 말했다. 물론 폭염경보 등이 발효하면 즉시 조사를 중단하고 낮 12시부터 5시까지는 현장조사를 자제하도록 하는 등 통계청은 조사관들을 위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강 팀장은 “조사관이 새 조사구를 맡으면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게 그 동네 공중화장실 위치”라며 현장의 고충을 덧붙였다.

박진자 조사관은 2004년 2월 입사해 20년 가까이 현장을 누빈 베테랑이다. 강 팀장 역시 1995년 통계청 공무원으로 입직해 통계 업무 전반을 거쳤다. 두 사람 다 “대면조사의 핵심은 라포(rapport·신뢰관계)”라고 입을 모았다. “고령 가구는 말벗이 돼주기도 하고, 대신 장을 봐달라는 경우도 있어요. 공공근로나 복지 제도에 대해 안내해드리기도 하죠. 자녀가 결혼하면 사비로 축의금을 드리기도 해요. 신뢰가 생기면, 단순한 조사를 넘어 관계가 생깁니다.”

하지만 신뢰를 쌓는 데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설득 기간 3개월을 포함해 통계를 정확하게 반영하기까지는 보통 5~6개월이 걸린다. 강 팀장은 “예비조사 기간을 2개월, 신뢰할 수 있는 통계를 확보하는 데 최소 3개월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 조사관은 “쉬었음 청년, 미취업 자녀, 비정규직… 이런 민감한 질문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부모님 입장에선 짜증도 날 수밖에 없지요”라며 거들었다.

현재 가계동향조사에 응한 1인 가구에는 7만원, 2인 이상 가구에는 10만원의 답례금이 지급된다. 2024년이 되어서야 지역고용조사의 답례금은 5000원에서 1만원으로 인상됐다.

강 팀장은 “어떤 분은 ‘2만 원 드릴 테니 오지 말라’고 농담하신 적도 있어요. 그만큼 통계조사에 대한 경계심이 크다는 뜻이죠”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김용훈 기자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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