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금융데이터거래소 카드사 유료데이터 90% ‘판매 0건’

3547개 데이터 상품 현황 전수조사

판매 0건 3146개, 전체 89% 달해

“구매, 카드사 개별 문의가 대부분”

30억원 이상 투입된 금융데이터거래소에서 카드사 유료데이터 약 90%가 전혀 판매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사들은 30조원에 달하는 국내 데이터 시장에서 고객 데이터를 활용한 데이터 판매와 수익 창출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만, 실제 거래소를 통한 판매 실적은 사실상 전무한 수준이다.

7일 본지가 지난달말 기준 금융데이터거래소에 공개된 9개 카드사(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우리·하나·BC·NH농협)의 유료 데이터 판매 상품 3547건에 대해 전수 조사한 결과, 현재 거래소를 통해 판매 중인 상품 중 다운로드 횟수가 0건인 상품이 전체의 89%(3146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다운로드 횟수가 0인 상품은 판매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카드사별로 판매 0건인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하나카드 96%(873건) ▷우리카드 95%(1423건) ▷NH농협카드 88%(722건) ▷BC카드 87%(27건) ▷현대카드 63%(5건) ▷삼성카드 54%(43건) ▷KB국민카드 28%(22건) ▷신한카드 25%(30건) ▷롯데카드 13%(1건) 순으로 나타났다.

금융데이터거래소는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보안원이 2020년 5월 데이터 유통 시장 활성화 및 안전한 데이터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출범한 플랫폼이다. 금융·비금융 데이터 판매자가 데이터 상품을 등록하고, 수요자는 등록·검색·계약·결제 등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의 ‘미스 매치’가 발생하면서 거래소 이용이 부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수요자는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기성품’ 데이터보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데이터를 선호하는데, 이를 위해 카드사에 직접 구매 문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실제 카드사들은 데이터 판매 채널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데이터바다’, 삼성카드는 ‘데이터랩’, KB국민카드는 ‘데이터루트’ 등을 통해 자사 카드 이용 고객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자료를 배포하며 이를 통해 데이터 분석 역량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기업이나 지자체의 경우 원하는 데이터가 플랫폼에 올라오는 형식보다는 맞춤형 데이터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부분 카드사에 직접 요청하거나 입찰을 통해 데이터를 구매한다”고 말했다.

다른 카드사 관계자도 “카드사에서 직접 요청을 받거나 대규모 거래의 경우 담당자의 설명이 필요할 때가 많다”면서 “플랫폼 거래는 어떤 데이터를 요청할 수 있는 확인하는 차원에서 활용하는 보조적인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데이터거래소의 운영비용이 거래 수익을 초과하는 문제도 지적된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 1월 금보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데이터거래소 내 유료 데이터 거래 금액은 1498만원, 유료 데이터 거래 건수는 단 3건에 그쳤다. 반면, 거래소 서비스 구축·운영에 들어간 비용은 총 33억4000만원에 달했다.

금보원 관계자는 “거래소를 통한 판매보다는 고객사가 카드사와의 직접 거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면서도 “규제나 데이터 구매에 대한 부담감, 데이터 활용 경험이 부족해 데이터 활용 활성화가 더딘 상황에서 금융데이터거래소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금융데이터거래소뿐만 아니라, 데이터 판매 시장의 성장에도 제약이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현재 카드사 데이터 시장은 예상보다 유의미하게 성장하지 않고 있다”며 “당장은 데이터 판매에서 큰 수익을 올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데이터 사업을 펼치고 있는 신한카드마저도 지난해 데이터 사업에서 발생한 수익은 약 140억원에 불과했다.

카드업계는 데이터 상품을 비롯한 신사업에서 수익성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신용판매 수익이 감소한 카드사들의 실적도 부진하다. 금융감독원의 ‘2025년 여신전문금융회사 상반기 영업실적’에 따르면, 전업카드사 8곳의 합산 순이익은 1조2251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4990억원) 대비 18.3% 감소했다. 정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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