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원청 책임 확대·노조 손배 면제…법치 흔드는 ‘정치 입법’ 논란ECCK “교섭거부도 형사처벌 위험…한국시장 철수 검토할 수도”정권 바뀌자 법 해석도 180도…경제계 “제도 리스크가 가장 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의원들이 28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던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되자 강한 유감을 표현한 뒤 회의장에서 퇴장하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의원들이 28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던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되자 강한 유감을 표현한 뒤 회의장에서 퇴장하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글로벌 공급망 충돌과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기업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노조에 사실상 면책 특권을 부여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28일 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여당 주도로 노동계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개정안이 본격 입법화되면서, 외국계 기업들까지 잇따라 ‘철수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29일 주한유럽상공회의소(EECCK)는 입장문을 통해 “교섭 대상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교섭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면, 일부 회원사는 한국 시장에서 철수를 고려할 수 있다”며 법안 재검토를 촉구했다. ECCK의 이례적인 철수 시사 발언은 국내법 개정이 외투기업의 경영환경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소위 통과안, 정부 당초안보다 강경…법적 감면·소급 면제까지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은 ‘원청 사용자 책임 확대’와 ‘노조 손해배상 청구 제한’을 넘어 ▷손해 소급 적용 ▷배상 책임 감면 ▷신원보증인 면책 ▷노조의 존립 방해 목적 손해배상 금지 등 노조의 법적 책임을 전방위적으로 면제하는 내용이 포함돼 산업현장에 상당한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초 정부가 국회에 제출했던 안보다도 노동계에 유리하게 조항이 보강되며, 사실상 ‘연대책임과 집단 면책’이 제도화된 셈이다. 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임금 수준 쟁의행위 참여 경위 부양가족 등 생계 사유를 반영해 배상액을 줄일 수 있도록 했고, 사용자 역시 법 시행 이전 손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소급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진짜 사장에게 교섭”…노동계는 환영, 산업계는 ‘법치 붕괴’ 반발

가장 큰 쟁점은 ‘사용자’의 정의를 원청으로까지 확대한 부분이다. 개정안은 실질적으로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면 고용 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사용자로 간주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하청노조가 원청과 단체교섭을 요구하거나, 쟁의행위를 할 경우 원청도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경영계는 이를 ‘하청노조 파업의 일상화’로 해석하며, 공급망의 단절·사업장 관리 통제력 상실 등 산업 전반에 대한 구조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또한 사용자가 조합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거나, 활동을 방해할 의도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면 그 자체로 금지되며, 신원보증인도 일절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했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정상적인 경영 활동 중 발생하는 충돌에도 노조가 면책을 주장하고, 법적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이는 기업의 자율경영 원칙을 무너뜨리고 경영권을 침해하는 대표적 정치 입법”이라고 말했다.

“정권 따라 법 해석도 바뀌는 나라”…경제계 투자 리스크 경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8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던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과된 뒤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이날 소위를 통과한 뒤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처리됐다. [연합]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8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던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과된 뒤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이날 소위를 통과한 뒤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처리됐다. [연합]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번 개정안에 대해 “노사의 대화를 촉진하고 노동시장 격차를 해소하는 데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라며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법의 취지가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후속조치를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며 “노사 교섭 질서의 예측 가능성을 해치지 않도록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며 촘촘히 적용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정치적 입장 변화에 따라 법률 체계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불신이 적지 않다. 특히 윤석열 정부 당시 같은 법안에 대해 “노사 균형을 해치는 법”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던 정부가 정권 교체 후 180도 입장을 바꿔 적극 추진에 나선 점은 “정책 일관성 상실”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경제계는 이를 두고 “정책 일관성은커녕, 정권 변화에 따라 법 해석과 시장 규칙이 달라지는 나라에서 장기 투자가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한다. 특히 최근 미국의 고율 상호관세 발효가 임박한 상황에서, 한국 내부에서조차 경영 리스크를 제도화하는 조치는 외국계 투자 이탈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제대로 된 제도보완 없인 외투 유치 어렵다”

노란봉투법은 공포 후 6개월 뒤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법적 혼란은 그 이전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원청이 단체교섭 대상인 하청노조의 쟁의행위까지 책임지게 되는 상황에서, 다층적 협력망을 바탕으로 하는 제조업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지금이라도 국회 본회의에서 입법 효과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산업계·외국기업 의견을 반영한 제도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제도 리스크를 방치하면 결국 국가 경쟁력의 기반을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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