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퇴직금 다 쓰면 어쩌지”…내년 환갑 앞둔 김씨, 종신보험 ‘이것’ 알아봤다 [이보소]

5개사 1차 출시…만 55세 이상 누구나 신청 가능

전 생보사 출시땐 계약 76만건·금액 35조원 확대

사망보험금의 생전 연금 전환…노후 소득 공백 메워

본인 납입 보험료 초과 수령 가능…추가 수수료 無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보험료는 약 490만원(2022년·보험개발원). 매달 성실하게 내는 돈을 더 값지게 쓰기 위해.‘이’왕 낸 ‘보’험료를 ‘소’중한 우리 인생에.

지난달 30일 출시된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로 종신보험을 생전 연금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 만 55세 이상 약 76만명이 대상이며, 은퇴 후 국민연금 전까지 ‘소득 크레바스’를 메우는 데 활용 가능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30일 출시된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로 종신보험을 생전 연금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 만 55세 이상 약 76만명이 대상이며, 은퇴 후 국민연금 전까지 ‘소득 크레바스’를 메우는 데 활용 가능하다. [게티이미지뱅크]

# .내년이면 환갑을 맞는 김석훈(가명) 씨. 5년 전 다니던 회사를 명예퇴직하고 자녀들을 모두 분가시킨 후 배우자와 함께 틈틈이 여행도 다니며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석훈 씨 부부는 작은 고민이 생겨났다.

그간 모아 놓은 돈과 퇴직금 등을 아껴가면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길어진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돈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 더 쉬다가 아르바이트나 소일거리를 할 생각이기는 하나, 하나둘씩 늘어가는 귀여운 손자·손녀들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다른 대안이 필요할 것 같은 요즘이다.

[헤럴드경제=박성준 기자] 대한민국이 초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국민의 안정적인 노후 준비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은퇴 후 근로소득이 없어지고 연금소득이 발생하는 시점까지의 공백기인 ‘소득 크레바스’에 대한 대비는 요원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가 지난 10월 30일 5개 생명보험사에서 도입됐다. 사망 후에만 받을 수 있는 종신보험을 유동화해 생전에 유용하게 생활자금으로 쓸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김 씨는 자신도 혹시 대상이 될 수 있을지, 어떻게 신청하는지 등이 궁금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기로 했다.

이번에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가 시행됐다는데, 어떤 제도인가요?

사망보험금 유동화는 사망보험금을 생전에 활용 가능한 연금 자산으로 전환해 보험계약자들이 노후 소득 공백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사망 후에 받을 돈’을 ‘살아 있을 때 연금처럼 나눠서 받는 것’입니다. 받은 만큼 사망보험금은 줄어들지만, 당장 필요한 생활비나 의료비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는 과거 종신보험 계약에 제도성 특약인 사망보험금 유동화 특약을 일괄 부가해 유동화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입니다. 유동화 특약이 부가된 상품에서 보험료 납입을 완료하고 신청 가능 연령에 도달하는 등 신청 요건을 만족하면 유동화가 가능합니다.

노후 준비 상황이 심각한가요? 소득 크레바스가 무엇인가요?

한국의 노후 준비 현실은 매우 심각합니다. 지난해 보험연구원이 은퇴 전 60세 미만의 전국 성인 남녀(1508명)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소득 크레바스를 잘 준비하고 있다고 답한 비중이 12%에 불과했습니다. 아직 준비를 못 하고 있다는 응답은 81.3%에 달했습니다.

소득 크레바스는 은퇴 후 근로소득이 끊기고 연금소득이 발생하기까지의 소득 공백기를 말합니다. 조기 퇴직자의 평균 퇴직 연령은 51.2세, 국민연금 수령 연령은 62~65세로 평균 12.5년의 공백기가 발생합니다.

실제 은퇴 가구의 57%가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응답했으며, 은퇴 후 적정 생활비가 월 336만원인 데 비해 실제 조달 가능한 금액은 65.7% 수준으로 월 100만원 이상 부족한 상황입니다. 올해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월 67만원으로 최소 생활비의 4분의 1에 불과하며,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입니다.

유동화 제도는 신청 자격이 따로 있는 건가요?

신청 시점 만 55세 이상의 보험계약자라면 소득이나 재산 요건과 상관없이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 제도는 원래 만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설계됐다가 최종적으로 만 55세 이상으로 확대됐습니다. 명예퇴직 등으로 50대에 은퇴한 이들도 국민연금을 받기 전까지의 소득 공백을 메울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것입니다.

어떤 보험계약이든 유동화가 가능한가요?

아닙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종신보험만 유동화가 가능합니다.

먼저 신청 시점 사망보험금 9억원 이하의 금리확정형 종신보험이어야 합니다. 보험료 납입이 완료된 계약이어야 하며, 납입기간이 10년 이상이어야 합니다. 또한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동일해야 하며, 신청 시점에 보험계약대출 잔액이 없는 월적립식 계약이어야 합니다.

변액종신보험, 금리연동형종신보험, 단기납종신보험 등 일부 종신보험과 초고액 사망보험금 계약(9억원 초과)은 1차 유동화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일반적으로 과거(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에 가입한 금리확정형 종신보험은 보험계약대출이 없다면 대부분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동화할 수 있는 한도와 기간은 어떻게 되나요?

사망보험금의 최대 90% 이내에서 유동화가 가능합니다. 다만 일시금 형태의 유동화는 불가능하며, 반드시 연금 형태로 나눠 받아야 합니다. 종신보험 고유의 특성을 고려해 전액 유동화도 불가능하며, 최소 10%의 사망보험금은 반드시 남겨야 합니다. 유동화 금액 총액은 본인이 낸 보험료보다 많도록 설정되며, 수령 기간은 최소 2년 이상 연 단위로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유동화 금액은 보험계약의 예정이율과 유동화 시점에 따라 달라집니다. 고연령일수록 재원인 해약환급금이 증가(부리)해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여성 소비자가 40세에 가입해 매월 15만6000원의 보험료를 10년 동안 총 1872만원을 납입한 사망보험금 1억원 보험계약(예정이율 7.5%)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봅시다. 그가 20년 동안 90% 유동화를 선택해 55세부터 연금을 받으면 월평균 12만7000원(총 3060만원)과 1000만원의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65세 시작 시 월평균 18만9000원(총 4543만원)과 1000만원의 사망보험금 ▷75세 시작 시 월평균 25만3000원(총 6090만원)과 1000만원의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늦게 시작할수록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지만, 건강 상태나 당장의 생활비 필요성을 고려해 적절한 시점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동화를 신청한 뒤에도 취소할 수 있나요?

네, 소비자 보호를 위한 여러 장치가 마련돼 있습니다.

사망보험금 유동화는 철회권과 취소권이 보장됩니다. 지급금 수령일로부터 15일, 신청일로부터 30일 중 먼저 도래하는 기간까지 철회가 가능합니다. 보험사가 중요 내용 설명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3개월 이내 취소도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부당한 사유로 사망보험금이 유동화된 경우에는 부활청구권도 보장됩니다. 유동화 도중 필요한 경우 중단 또는 조기 종료 신청도 가능하며, 이후 유동화 재신청도 가능합니다.

혹시 신청 시에 수수료 등이 들어가는 것은 아닌가요?

아닙니다. 사망보험금 유동화를 신청하더라도 고객이 부담하는 추가 비용은 없습니다. ‘제로’ 사업비로 운영되므로 별도의 수수료나 사업비가 부과되지 않습니다.

보험계약대출로도 자금을 끌어 쓸 수 있던데, 무엇이 다른가요?

사망보험금 유동화와 보험계약대출은 근본적으로 다른 제도입니다.

보험계약대출은 이자가 발생하고 상환 의무가 있지만, 사망보험금 유동화는 본인의 사망보험금을 미리 받는 것이므로 이자 부담과 상환 의무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매월 20만원씩 20년간 총 4487만원을 받는다면, 보험계약대출은 20년 후 이자비용 4416만원이 발생하고 잔존 사망보험금이 697만원으로 줄어들지만, 유동화는 이자비용 없이 잔존 사망보험금 3000만원이 유지됩니다.

일시적인 자금이 필요한 경우라면 보험계약대출을, 장기적인 노후 생활비가 필요하다면 유동화를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 종신보험을 유동화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지난달 23일경 문자·카카오톡 등의 방법을 활용해 대상 고객에게 안내했습니다. 만약 확인이 필요하시다면 가입한 생보사에 문의하시면 됩니다. 지난 10월 말 1차로 출시한 5개 생보사(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신한라이프, KB라이프)의 유동화 대상 계약은 약 41만4000건, 가입금액 23조1000억원으로 추산됩니다.

내년 1월 2일까지 전체 생명보험사에서 출시되고, 이때 유동화 대상은 75만9000건, 35조4000억원으로 확대될 전망입니다.

신청 가능한 나이가 만 55세의 고령이라 신청 방법 등이 복잡하면 애로사항이 있을 것 같은데요.

고령층 전용 제도인 점을 고려해 시행 초기에는 대면 고객센터 또는 영업점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특히 보험사들은 유동화 비교안내 시스템을 개발했고, 유동화 신청 전 시뮬레이션을 통해 소비자가 선택한 유동화 비율과 기간에 따른 지급금액 비교표를 제공합니다.

운영 초기에는 12개월 치 연금금액을 일시에 지급하는 연 지급형으로만 운영하며, 전산 개발이 완료된 이후 내년부터는 월 지급형과 현물(서비스) 지급형도 순차 출시할 예정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유동화가 유리할까요?

사망보험금 유동화는 무엇보다 당장 현금 흐름이 부족한 이들이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사망보험금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으면서, 은퇴 이후 국민연금을 받기 전까지 소득 공백이 생기기 쉬운 이들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50~60대쯤 자녀가 독립해 부양 부담은 줄었지만 생활비를 보충할 필요가 있는 가구에 유리합니다. 또 70대 이상 고령층 가운데 건강 부담이 커서 요양·간병·치료비 등의 지출이 예상되는 경우라면 합리적입니다. 필요한 생활자금과 남길 보장 사이 균형점을 찾아 최적의 설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나중에 유동화를 위해서라도 종신보험에 가입해 보고 싶은데, 주의점이 있을까요?

사망보험금 유동화가 고수익 저축성 상품으로 전환한다고 오인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건강 상태가 나쁘거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유동화보다 사망보험금 자체가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현재 경제적 불편이 없다면 굳이 미래 보장을 줄일 필요가 없습니다. 유동화 기간이 너무 짧으면 복리효과를 누리기 어렵고 비율이 너무 높으면 잔여 보장금액이 많이 줄어듭니다.

고객의 경제적 상황과 건강 상태에 따라 신중하게 선택하고, 본인에게 필요한 생활자금과 남길 보장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ps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