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여보! 나만 모르는 성과금 통장 있는 건 아니지?” ‘비밀계좌’ 20만개 돌파 [찐이야! 짠테크]

연말 성과급 시즌에 개설 문의 증가세

비상금 비밀 통장 ‘스텔스 계좌’ 입소문

시중은행서 올해만 5500건 넘게 개설

“이용 불편해 출금 자제…목돈 쌓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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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를 이용해 제작함]
[챗GPT를 이용해 제작함]

[헤럴드경제=유혜림 기자] “비상금이 많지 않은데도 들키면 괜히 민망하잖아요.”

#. 2년 전 결혼한 직장인 김모(35) 씨는 올 연말 뜻밖의 상여금을 받는다는 소식에 나만 볼 수 있는 ‘비밀 계좌’를 하나 개설했다. 요즘은 오픈뱅킹으로 금융사별 흩어진 계좌가 한눈에 볼 수 있는 시대라 비밀이란 없다. 하지만 김 씨가 택한 일명 ‘스텔스 통장’은 인터넷이나 모바일뱅킹에서는 조회가 불가능하고 개설한 은행 창구를 직접 찾아가야만 거래가 가능하다. 김 씨는 “이용하기는 번거롭지만 오히려 돈을 묻어두는 데는 효과적”이라고 했다.

시중은행 스텔스 통장 20만좌 돌파

최근 주식 투자 열풍에 연말 성과급 시즌까지 맞물리면서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스텔스 통장 개설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8일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을 대상으로 최근 5년간 스텔스 통장 현황을 집계한 결과, 지난 9월 말 기준 등록 건수는 20만개(20만607개)를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18만5413개에서 ▷2020년 18만8222개 ▷2023년 19만1796개 ▷2024년 19만5097개로 꾸준히 증가했다. 매년 3200여건씩 증가하더니 올해 들어서만 5500건 넘게 신규 개설됐다.

2007년 등장한 이른바 ‘스텔스 통장’이라는 이름은 적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최신 전투기 ‘스텔스기’에서 따왔다. 원래 도입 취지는 비상금 용도가 아니라 인터넷뱅킹 확산기 당시 보이스피싱·파밍 등 전자금융사기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하지만 오픈뱅킹 등 사용 편의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나만의 비밀 계좌를 원하는 수요가 커졌고 이 통장은 자연스럽게 직장인들 사이 입소문을 탔다.

맞벌이 가정이 보편화된 요즘, 공동 생활비와 저축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나만의 통장’을 만들려는 고민도 이제는 흔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부부 절반가량(통계청 2023년 기준 48.2%)은 맞벌이를 한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전국 기혼남녀 300명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남성의 40%, 여성의 44%가 비상금이 있다고 답했다. 40대 여성 이모 씨는 “가끔은 남편 몰래 친정에 용돈도 챙겨드릴 수 있는 나만을 비상금을 모으고 싶다”고 말했다.

“불편함? 오히려 좋아!”…목돈 저축용 수요↑

개설 절차는 간단하면서도 다소 번거롭다. 가입부터 입출금·조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은행 업무는 직접 영업점을 방문해야만 처리된다. 국민은행은 ‘전자금융거래제한계좌’, 신한·우리은행은 ‘보안계좌’, 하나은행은 ‘세이프 어카운트’라는 명칭을 쓴다. 예·적금은 물론 펀드·신탁·외화예금 등 대부분의 금융상품도 스텔스 계좌로 만들 수 있다.

스텔스 통장 가입자들은 이 번거로움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말한다. 모바일뱅킹으로 손쉽게 송금하다 보면 안 써도 될 돈을 흘려보내기 쉽지만, 스텔스 통장은 일부러 시간을 내 지점을 찾아가야 하니 자연스럽게 소비가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말·연초 성과급 시즌마다 가입 문의가 들어오는 편”이라며 “목돈을 잠시 묻어두려는 고객들 수요도 있다”고 말했다.

은행 애플리케이션에서 제한적 이체가 가능한 스텔스 통장도 등장했다. 광주은행은 지난해 4월 ‘와(Wa)뱅크 스텔스 통장’을 출시해 본인 명의 스마트기기 인증 후 발급되는 전용 인증서로 접속할 때만 계좌 조회와 이체가 가능한 구조로 구현했다. 광주은행 관계자는 “예금주들이 개인 정보 외부 노출을 꺼리는 경향에 맞춰 기존 공동·금융인증서를 사용하는 계좌보다 프라이버시 보호 기능을 한층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비밀 계좌를 만들고 싶지만 직접 지점까지 찾아가는 일이 번거롭다면 ‘계좌 감추기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 서비스는 스텔스 통장이 아닌 일반 계좌지만 모바일뱅킹이나 인터넷뱅킹에서 계좌를 감출 수 있는 기능이다. 평소에는 계좌를 숨겼다가 금융 거래가 필요할 때 잠시 서비스를 해제하면 된다.

forest@heraldcorp.com